바뀜

조선 현종

2,376 바이트 추가됨, 2009년 4월 1일 (수) 07:39
편집 요약 없음
{{틀:조선 역대 왕계표}}
*[[조선]]의 18대 임금. 재위([[1659년]]~[[1674년]]). 생몰연대([[1641년]]~[[1674년]]).
===[[예송 논쟁]]===
현종은 즉위 직후부터 [[예송 논쟁]]에 휘말렸다. 주된 내용은 [[조선 효종|효종]]을 장자로 보느냐, 혹은 차남으로 보느냐이다. [[조선 효종|효종]]은 [[조선 인조|인조]] 임금의 둘째 아들이었으나 소현세자가 죽음으로써 세자 자리에 올랐다. [[조선 효종|효종]]이 죽고 현종이 왕위에 오르자 현종의 할머니 뻘인 [[자의대비]]([[조선 인조|인조]]의 계비)가 3년 상복을 입는 것([[조선 효종|효종]]을 장자로 보고, 정통 계승. [[남인]])과 1년 상복을 입는 것([[조선 효종|효종]]을 차남으로 보고 일반 상례에 따르는 것. [[서인]])이 충돌하였다. 이를 기해예송이라고 한다. 이를 [[기해예송]]이라고 한다. 기해예송에서는 [[서인]]이 승리하게 된다.

[[1674년]]에는 [[갑인예송]]이 일어나느데, 주된 내용은 왕대비(현종이 어머니뻘)이 죽자, 대왕대비인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의 기한을 정하는 것이다. 이 때 [[서인]]은 9개월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남인]]은 1년 상복을 주장했다. 이 때 현종은 [[남인]]의 주장을 들어줬다.

예송논쟁은 주로 무모한 [[붕당]]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사례로 쓰인다. 상복을 입는 기간을 가지고 소모적인 논쟁과 정권다툼에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 이는 정치·사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관점의 차이이며, [[예송 논쟁]]은 조선의 [[붕당]]이 단순한 권력다툼이 아니라 사상·철학·정치·사회적 이해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고도의 정치활동으로 규정되고 있다.

===치세(?)===
현종은 국방강화와 조선의 통치체제 재확립을 위해서 노력하였다. 군대를 양성하고, 화포를 개량하여 대량 생산하는 등 군비증대를 하였고, 북방 [[여진족]]을 공격하여 북방을 안정화시켰다. 백성들을 장악하기 위하여 [[오가작통사목]]을 제정했다. 수리시설과 양전사업에 힘썼으며, 호남지역에 [[대동법]]을 처음으로 실시하였다.
[[분류:조선]]
[[분류:임금]]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