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뀜

위만

2,099 바이트 추가됨, 2008년 7월 26일 (토) 18:39
잔글
1 revision
[[사기]]와 [[삼국지]]에는 위만이 [[연나라]]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위만이 [[중국계]]라고 하여도 그가 [[고조선]]에 망명할 당시 상투를 틀고, 복식을 [[고조선]]식으로 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고조선]]과 인접한 지역에서 [[고조선]]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당시에는 [[진나라]]와 [[한나라]]의 왕권강화책에 반발하여 [[고조선]]에 망명한 중국 귀족세력이 상당히 있었다. 위만도 이 때문에 [[고조선]]으로 망명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연나라]] 왕 '[[노관]]'이 제후들과 [[한나라]]에게 공격을 받아서 [[연나라]]를 버리고 [[흉노]]로 달아나자, 위만도 당시의 혼란 속에서 [[고조선]]으로 망명하였다. [[기원전 195년]].

당시 [[고조선]] 왕 [[준왕]]은 그를 신뢰하여, 위만은 [[중국]]과 인접한 [[고조선]] 서부([[대릉하]]~[[북경]] 인근)의 공백지 방어 책임자로 임명된다. 그리고 박사(당시의 지방장관?)라는 직위도 얻게 된다. 그 지역은 기원전 3세기 이후부터 [[중국]]의 망명인들이 많이 정착해 있던 곳이었다. 위만은 이들을 모아서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으로 침공하였다.([[기원전 194년]]) [[준왕]]은 '[[진국]]'으로 피난을 가고, 그는 [[왕검성]]을 장악하게 된다.

그는 [[왕검성]]을 장악한 이후 강력한 대외정복, 중앙관제 확립을 꾀하게 된다.

===위만은 중국 사람인가?===
*망명 당시 상투를 짜고 [[고조선]]의 옷을 입었다.
*당시 [[요서]]방면에는 [[한나라]] 망명인들과 [[고조선]]인들이 섞여 살았다.
*[[준왕]]의 신임을 쉽게 얻은 점으로 보아서 완전한 [[중국]]계는 아닐 것이다.
*위만정권이 무너질 당시 관직들을 보면 그 명칭이 '[[고조선]]식'이었다는 것을 볼 때, 위만정권도 [[고조선]]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분류:고조선]]
[[분류:임금]]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