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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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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3세기부터 한반도 서부에서 존속하였던 소국 연합체를 마한이라고 부른다. [[삼한]]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마한의 역사===

대체로 기원전 2~3세기에서 서기 3세기에 이르기까지, 경기·충청·전라도 지방에 분포한 54개의 소국(小國)집단을 가리킨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마한 54소국은 큰 나라는 1만여 가(家), 작은 나라는 수천 가로서 모두 합하면 10여 만 호(戶)가 된다고 한다.

기원전 3세기경 토착집단의 점진적인 발전의 결과 삼한이 대두했다고 본다. 이는 기원전 2~3세기 중남부 지역에 좁은놋단검문화를 배경으로 한 다수의 정치집단이 존재했는데, 이들이 마한을 이루는 기본세력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기원전 1세기 이후 [[고조선]]의 유민과 문화의 유입, 철기의 보급, [[부여]]계 유이민 집단([[백제]])의 정착 등의 정치 문화적 변화 속에서 철기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세력권이 형성됨에 따라 [[청동기]] 문화 단계의 마한의 영향력은 점차 위축되었다. 그리하여 2세기 이후부터 [[백제]]가 마한을 완전히 통합할 때까지 마한 지역은 [[백제]] 중심의 소국연맹체와 [[목지국]](目支國) 중심의 토착세력권이 병존하는 상태였으며, 이후 [[백제]]가 점차 강성하여 마한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5세기 경에는 [[백제]]에 완전히 편입되었다고 보고 있다.

특히 [[247년]] 마한의 영주였던 [[목지국]]이 다른 연맹국([[백제]]도 포함)과 함께 연합군을 창설하여 [[대방군]]과 [[낙랑군]]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함으로써 [[목지국]]의 지도력에 큰 상처를 입고, [[백제]]가 마한 연맹체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이와 별개로 마한의 남부 지역이 [[일본]]의 옛 이름으로 알려진 '[[왜]](倭)'였다는 설이 대두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한반도의 왜]]에 대해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마한 소국들<ref>[[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근거</ref>===
감해국(感奚國) ·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 ·건마국(乾馬國) ·고랍국(古臘國) ·고리국(古離國) ·고비리국(古卑離國) ·고원국(古爰國) ·고탄자국(古誕者國) ·고포국(古蒲國) ·구로국(狗盧國) ·구사오단국(臼斯烏旦國) ·구소국(狗素國) ·구해국(狗奚國) ·내비리국(內卑離國) ·노람국(怒藍國) ·대석삭국(大石索國) ·막로국(莫盧國) ·만로국(萬盧國)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 ·모수국(牟水國) ·[[목지국]](目支國) ·[[백제]]국(伯濟國) ·벽비리국(辟卑離國) ·불미국(不彌國) ·불사분사국(不斯濆邪國) ·불운국(不雲國) ·비리국(卑離國) ·비미국(卑彌國) ·사로국(駟盧國) ·상외국(桑外國) ·소석삭국(小石索國) ·소위건국(素謂乾國) ·속로불사국(速盧不斯國) ·신분활국(臣濆活國) ·신소도국(臣蘇塗國) ·신운신국(臣雲新國) ·신흔국(臣國) ·아림국(兒林國) ·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 ·염로국(冉路國) ·우휴모탁국(優休牟涿國) ·원양국(爰襄國) ·원지국(爰池國) ·일난국(一難國) ·일리국(一離國) ·일화국(日華國) ·임소반국(臨素半國) ·자리모로국(咨離牟盧國) ·지반국(支半國) ·지침국(支侵國) ·첩로국(捷盧國) ·초리국(楚離國) ·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 ·치리국국(致利鞠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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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분류:한국사]]
[[분류: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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