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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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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22대 임금. 재위 [[475년]]~[[477년]].
현재 공인되고 있는 이름은 `文周`이나, 문주(文洲)·문주(文州)로도 알려져 있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수도 [[한성]]으로 침공해오자, [[개로왕]]의 명을 받들고 [[신라]]에 구원군을 요청하였다. [[신라]]는 12만 지원군을 파견하였으며, 문주는 2차로 1만 지원군을 대동하고 [[한성]]으로 향하던 중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주왕은 방어에 용이한 [[웅진성]](현재 [[공주시]] 인근)으로 피난하여 왕위를 이어갔다. 그리고 나라를 수습하려 하였으나, 이번에는 귀족들간에 내분이 일어났다. 부여씨(扶餘氏)·해씨(解氏)·진씨(眞氏) 등 부여족 계통의 한성 지배세력은 남부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던 사택씨(沙宅氏)·연씨(燕氏) 등 마한계(馬韓系) 세력의 도전을 받았다. 또한 부여족 계통의 구귀족들 내부의 갈등이 이러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귀족들의 통제에 실패한 문주왕은 [[477년]] 당시 정권을 장악한 병관[[좌평]] `[[해구]]`에게 살해되었다.
[[분류:백제]]
[[분류:임금]]
*백제 22대 임금. 재위 [[475년]]~[[477년]].
현재 공인되고 있는 이름은 `文周`이나, 문주(文洲)·문주(文州)로도 알려져 있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이 수도 [[한성]]으로 침공해오자, [[개로왕]]의 명을 받들고 [[신라]]에 구원군을 요청하였다. [[신라]]는 12만 지원군을 파견하였으며, 문주는 2차로 1만 지원군을 대동하고 [[한성]]으로 향하던 중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주왕은 방어에 용이한 [[웅진성]](현재 [[공주시]] 인근)으로 피난하여 왕위를 이어갔다. 그리고 나라를 수습하려 하였으나, 이번에는 귀족들간에 내분이 일어났다. 부여씨(扶餘氏)·해씨(解氏)·진씨(眞氏) 등 부여족 계통의 한성 지배세력은 남부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던 사택씨(沙宅氏)·연씨(燕氏) 등 마한계(馬韓系) 세력의 도전을 받았다. 또한 부여족 계통의 구귀족들 내부의 갈등이 이러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귀족들의 통제에 실패한 문주왕은 [[477년]] 당시 정권을 장악한 병관[[좌평]] `[[해구]]`에게 살해되었다.
[[분류:백제]]
[[분류:임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