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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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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백제 역대 왕계표}}
*[[백제]]의 21대 임금. 재위 [[455년]]~[[475년]].
`근개루왕`이라고도 부른다. [[469년]] [[고구려]]를 선제 공격하는 한편, 현 [[개성]] 인근에 방어선을 설치하여 [[고구려]]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또한 [[중국]] [[송나라]]와의 기존 유대관계를 튼튼히 하였고, [[나제동맹]]도 튼튼히 유지하였다. 그러나 [[472년]]에 [[북위]]에 사신을 파견하여 [[고구려]] 공격을 위한 병사를 내어 달라는 것이 [[북위]]에 거절당하고, 도리어 [[고구려]]의 침공을 불러왔다.

[[장수왕]]이 이끄는 [[고구려]] 군에게 지속적인 패배로 인해서 [[475년]]에는 수도인 [[한성]]이 포위당했다. 개로왕은 태자인 [[문주왕|문주]]를 [[신라]]에 보내어 구원군을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백제]]-[[신라]]의 12만 연합군이 [[고구려]] 3만 군대에게 대항하게 되었다. 그러나 단 7일 만에 연합군은 대패하였다. 개로왕은 성문을 열고 도망치다가 사로잡혀 [[아차산성]] 밑에서 처형당했다.

[[백제]]가 이렇게 [[고구려]]에 무력하게 무너진 것은 중앙권력의 내분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그는 외척이나 다른 귀족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강력한 전제왕권을 추구했다. 대표적인 예가 아들인 [[문주왕|문주]]를 [[상좌평]]에 앉힌 것이다. 이 결과 귀족들은 숙청당하거나 반대파로 돌아섰고, 일부는 [[고구려]]에까지 망명하여 [[백제]]의 허실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또한 [[고구려]] [[장수왕]]이 보낸 첩자 `도침`에 속아서 국력을 낭비하고, 바둑을 두는 데 허송세월을 보내는 등 여러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침의 이야기는 신빙성을 갖기 어렵다.

개로왕과 관련된 [[도미 설화]]가 있다. 개로왕은 도미의 아내가 절세미인이라는 것을 듣고 여러 방법을 통하여 아내를 빼앗으려 하였으나 모두 실패하고, 도미는 아내와 함께 [[고구려]]로 탈출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당시 개로왕대의 [[백제]] 분열을 상징하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분류:백제]]
[[분류: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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