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평의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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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도병마사가 가지고 있던 군사 관계만이 아니라 조세와 화폐, 형벌 등 나랏일을 전반을 다루는 관청이 되었다. 재신추신의 숫자가 대폭 늘면서 도평의사사는 50~80명이 참석하는 거대 기구가 되었다. 도평의사사를 도당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도평의사사에 참석하는 이들은 대개 권문세족이었으며, 이로서 권문세족들의 고려 지배가 가능해졌다. 도평의사사에서 결정된 사항은 국왕이라고 할지라도 거부하기가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