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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2,401 바이트 추가됨, 2008년 8월 9일 (토)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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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옛명칭은 도이(島夷), 동영주(東瀛洲), 섭라(涉羅), 탐모라(耽牟羅), 탁라 등으로 불리어 왔다.

이들 명칭중 '동영주'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섬나라' 라는 뜻이다. [[제주도]]의 개벽신화인 3성(三姓)신화에 의하면 태고(기원전후)에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 라고 하는 삼신인(三神人)이 [[한라산]] 북쪽 모흥혈(毛興穴:현재의 [[삼성혈]]) 이라는 땅 속에서 솟아나와 가죽옷을 입고 사냥을 하며 살고 있었다. 이들 삼신인들은 '[[벽랑국]](碧浪國)' 에서 오곡의 씨앗과, 송아지, 망아지 등을 갖고 목함을 타고 제주특별자치도 동쪽해상으로 들어온 삼공주를 맞아 혼례를 올렸다. 이때부터 이들은 오곡의 씨앗으로 농사를 짓고 소와 말을 기르며 살기 시작했다.

그후 '[[고을나]]'의 15대 후손 3형제 (후, 청, 계)가 당시 '[[신라]]'에 입조(入朝)하여 '탐라' 라는 국호를 갖게 되었고, 또 이때부터 탐라는 [[신라]]를 섬기게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이 탐라국은 [[고구려]], [[백제]] 및 [[신라]]로 분열된 삼국시대에는 이들 나라들과 독자적으로 혹은 그에 예속되어 있으면서 외교관계를 맺어왔다 . 전성기에는 [[전라도]] 남해안 일대에도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 시대에도 탐라국은 신하를 자처하면서 [[고려]] 조정과 원만하게 지낸 결과 탐라국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의 맥은 계속 이어졌다.

[[1105년]]에는 [[고려]]의 행정구역인 탐라군으로 바뀌었으나, 성주-왕자의 지위는 그대로 존속되어 실질적인 탐라의 통치자 역활을 하였다.

13세기 중엽, [[삼별초]] 항쟁군의 최후 거점지역이 되었다가 [[삼별초]]를 토벌한 [[원나라]]의 방목장이 되었다. 이때 탐라국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사실상 멸망하였다. 또한 [[원나라]]의 영향으로 독특한 [[제주도]] 방언이 생긴 것으로 짐작된다.

최종적으로 [[1402년]] 성주 '[[고복례]]'가 탐라국왕을 일컫는 '[[성주]]'라는 칭호를 [[조선]]에 반납하면서 탐라국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바로가기: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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