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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요나라]]가 할양한 압록강 이남의 6지역. [[홍화]], [[용주]], [[통주]], [[철주]], [[귀주]](구주), [[곽주]] 등이다.
[[고려]] 때 군사상, 교통상 요지였던 강동 6주는 [[여진족]]이살고 있었기에 북방 진출에 큰 장애였다. 또한 강동 6주 너머에는 [[요나라]]가 있었기에 함부로 개척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993년]] [[거란 침공]](1차) 때, [[소손녕]]과 [[서희]]가 담판을 지어 "[[요나라]]와 국교를 맺기 위해서는 길이 닦여 있어야 하는데, 이 지역의 [[여진족]]을 토벌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나라]]에 요구하였다. 이에 [[요나라]]가 요구에 응하여, [[994년]] [[고려]]는 [[여진족]]을 몰아내고 이 지역에 강동 6주를 설치하였다. [[고려]]는 이리하여 [[압록강]]까지 국경을 넓히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는 강동 6주 개척 후, [[요나라]]와 국교를 맺지 않고, 이 지역에 성을 쌓아 [[요나라]] 침공에 대비하였다. 이에 [[요나라]]는 수 차례 반환을 요청하였고, 이 문제를 빌미삼아 [[요나라]]는 여러 차례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오히려 3차 침공에서는 강동 6주의 군사적 기능이 발휘되어 "[[귀주]] 대첩"을 일구는 등 [[고려]]의 북방전진기지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하였다.
3차에 걸친 [[거란 침공|요나라 침공]]이 실패하자, [[요나라]]는 더 이상 [[고려]]에게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하지 않았고, 강동 6주는 완전히 [[고려]] 영토로 편입되었다.
[[분류:고려]]
[[분류:지명]]
[[고려]]시대 [[요나라]]가 할양한 압록강 이남의 6지역. [[홍화]], [[용주]], [[통주]], [[철주]], [[귀주]](구주), [[곽주]] 등이다.
[[고려]] 때 군사상, 교통상 요지였던 강동 6주는 [[여진족]]이살고 있었기에 북방 진출에 큰 장애였다. 또한 강동 6주 너머에는 [[요나라]]가 있었기에 함부로 개척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993년]] [[거란 침공]](1차) 때, [[소손녕]]과 [[서희]]가 담판을 지어 "[[요나라]]와 국교를 맺기 위해서는 길이 닦여 있어야 하는데, 이 지역의 [[여진족]]을 토벌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나라]]에 요구하였다. 이에 [[요나라]]가 요구에 응하여, [[994년]] [[고려]]는 [[여진족]]을 몰아내고 이 지역에 강동 6주를 설치하였다. [[고려]]는 이리하여 [[압록강]]까지 국경을 넓히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는 강동 6주 개척 후, [[요나라]]와 국교를 맺지 않고, 이 지역에 성을 쌓아 [[요나라]] 침공에 대비하였다. 이에 [[요나라]]는 수 차례 반환을 요청하였고, 이 문제를 빌미삼아 [[요나라]]는 여러 차례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오히려 3차 침공에서는 강동 6주의 군사적 기능이 발휘되어 "[[귀주]] 대첩"을 일구는 등 [[고려]]의 북방전진기지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하였다.
3차에 걸친 [[거란 침공|요나라 침공]]이 실패하자, [[요나라]]는 더 이상 [[고려]]에게 강동 6주 반환을 요구하지 않았고, 강동 6주는 완전히 [[고려]] 영토로 편입되었다.
[[분류:고려]]
[[분류: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