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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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의 결과는 남경조약(1842년)으로 귀결되었다. 조약에는 광동성공행무역을 폐지하고, 광주, 복주, 하문, 영파, 상해의 5개항을 개항하고, 홍콩섬을 영국에 할양하고, 수출입 물품에 적정관세를 부가하고, 아편대금이 포함된 전쟁비용을 보상한다는 것 등이 들어 있었다. 다음 해에는 호문추가조약이 체결되어 영사재판권을 인정하고 최혜국대우를 약속하였다.

남경조약은 외견상 청나라가 외국과 맺은 근대조약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불평등조약이었다. 영국인들은 개항장에서 치외법권을 가진 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으나, 청나라는 문제가 되었던 아편무역조차 제한할 수 없는 처지에서 관세 자주권까지 상실하였던 것이다. 이 조약내용들은 1844년에 맺은 프랑스와의 황포조약미국과의 망하조약에서 그대로 반복되었다. 또 무력을 동원한 영국정부의 요구 방식은 이후 서구열강의 대중국 기본 정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