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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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제국~일제강점기~군정기에 이르는 민족주의 항일애국지사. 생몰연대(1876년~1949년 6월 26일)

젊은 시절

본명은 김창수 였으나, 오랫동안 도피생활을 하면서 이름을 김구로 바꿨다. 1893년에 동학에 입교하였으며, 1894년에 팔봉도소접주가 되었다. 20세도 안 된 나이에 접주가 되어서 '소년 접주'라고도 불렸다. 동학교도를 이끌고 해주성을 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도피생활을 하다 위정척사파인 유인석과 고능선의 문하로 들어갔다.

1895년에 만주로 돌아가 의병전쟁에 뛰어들었으나 참패하였으나 1896년, 명성황후를 살해한 쓰치다 중위를 죽여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사형이 언도되었으나 사형직전 고종 황제의 특명으로 풀려나왔다. 잠시 절에도 들어갔으나 곧 환속하였고, 이후 애국계몽운동에 뛰어들어 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독립운동 시절

1910년 신민회에 가입하였으며,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맹세했다. 그러다 안명근 사건의 관련자로 몰려 옥에 들어갔으며, 1914년에 출옥한 이후 학교를 세우면서 농촌계몽운동에 힘썼다. 그리고 1919년 3.1 운동 이후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