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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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길림성 동남부에 있는 지역. 간토, 연길도(중국식)라고도 부른다. 간도는 동간도와 서간도로 나뉘어져 있다.

보통 간도라 하면 '동간도'를 말하며, 동간도의 면적은 약 2만 1천 제곱킬로미터이다. 간도는 원래 여진족이 많이 살았으나, 조선 왕조 초기에는 조선에 조공을 바쳤으며, 청나라 건국 후에 이 지역이 공백지가 되자, 조선인들이 많이 건너가 조선청나라 사이의 주요한 국경분쟁거리가 되었다.

이에 1712년 조선청나라에서는 관리를 보내어 두 나라의 경계선을 결정하고, 백두산 정계비를 세웠다.

1881년 청나라에서는 간도를 개척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간도에 사는 조선인을 일방적으로 청나라 사람으로 간주하겠다고 통고하였다. 이에 조선 조정은 반발하여 1883년 어윤중, 김우식 등을 보내어 정계비를 조사하게 하고, 청나라 조정에서 보낸 사신과 담판을 지으려 하였다. 청나라는 정계비의 '토문강'을 '두만강'으로 해석하여 주장을 펼쳤으나, 조선의 논리에 밀리자 회담을 결렬시켰다.

1902년 대한제국 조정에서는 이범윤을 북변간도관리로 임명하고, 이를 청나라 공사관에 통보하고 파견하였다. 간도 지역의 영유권 분쟁은 러일전쟁으로 잠시 소강상태였으나, 일본러일전쟁에서 이기자, 1909년 일본은 남만주 철도 부설권을 얻는 대신 간도일대를 청나라에 넘기는 '간도협약'을 맺어 청나라에 간도지역을 양보하였다.

간도협약의 근거로는 1905년 일본이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이 쥐고 있다는 근거에서 비롯되었다. 국제외교문제는 모두 일본대한제국을 대신해서 처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 일본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받아들여 간도협약을 비롯하여 1941년 이전에 맺은 조약을 모두 무효로 했기 때문에 간도는 중국과 미해결된 영토분쟁 지역으로 아직도 남아있다.